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시장의 맹주는 여전히 중국이다.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세계 시장의 90%가량을 장악하고 있어서다. 한국 배터리만 고집했던 국내 ESS 시스템 업체들도 중국 배터리 업체와 손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미국 내 1위 태양광 사업자인 한화큐셀은 하반기 유럽 시장에 내놓는 가정용 ESS 솔루션 ‘큐홈 G4’에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하기로 했다. 중국 폭스ESS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 ESS와 변압기, 전기차 충전기 등을 큐홈에 넣기로 한 것.

한화큐셀 관계자는 “치열한 가격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유럽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 업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폭스ESS의 ESS용 LFP 배터리와 변압기 등은 한국 기업보다 20~30%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광·ESS 모듈 업계는 요즘 미국과 유럽을 완전히 다른 시장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관세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문에 중국산 부품과 배터리 사용이 쉽지 않다. 한화큐셀도 미국 시장에선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산 규제가 적은 유럽 시장은 다르다. 한화큐셀 등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유럽연합(EU)이 미국처럼 강력하게 중국산을 제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섣불리 제재했다가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유럽 기업들이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 강국인 독일뿐만 아니라 명품과 항공기 등을 중국에 판매하고 있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머뭇거리긴 마찬가지다.

여기에 관세 등의 조치가 가격 상승을 유발해 유럽의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제품 가격과 경쟁력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한국 기업이 중국과 손잡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 네트워크가 약한 중국도 한국 기업들과 손잡기를 원하고 있다. 한화큐셀은 OEM을 요청한 중국 업체만 50곳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변화 움직임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요즘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중국 부품 업체의 납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리튬, 니켈 등을 공급할 수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 합작 공장을 중국 화유코발트와 세워 작년 6월 가동을 시작했다.

성상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