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언젠가부터 뉴스를 보기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재난의 일상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재난 사고와 그로 인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시민들은 언제 어디에서 또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하며, 재난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을 미리 예방할 수 없을까?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까? 재난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이 됐다.

영국에서 화제인 책 <먼지가 가라앉으면(When the Dust Settles)>에는 ‘세계 최고의 재난 전문가’인 루시 이스트호프(Lucy Easthope)가 각종 재난 현장을 누비면서 경험했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겼다.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폭탄이 폭발하거나, 도시가 침수되거나, 또는 대규모 전염병이 확산하면 루시의 휴대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을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최악의 홍수로 꼽히는 2016년 돈캐스터 홍수, 2014년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자 298명이 전원 사망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여객기 추락 사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재난 사고의 현장에 그녀가 있었다.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재난 전문가 루시는 독수리를 급히 찾았다
책을 통해 그녀는 혼란스러웠던 재난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재난 현장에서 어떤 즉각적인 조치와 활동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아울러 재난 이후에 필요한 치유 프로그램과 재난 방지를 위한 각종 매뉴얼을 소개한다.

책이 전하는 재난 사건들은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처럼 읽힌다. 각종 미스터리와 반전으로 가득 차 있어 흥미를 유발한다. 2005년 7월 7일과 7월 21일 양일간 영국 런던 시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영국 전역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당시 루시가 취했던 행동 가운데 하나는 비둘기를 쫓을 수 있는 ‘매를 찾는 일’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당시, 뉴욕 도심의 비둘기들이 참사의 현장에서 사망자들의 작은 뼈들을 주워 둥지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재난 현장에서 수집한 작은 정보의 조각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그런가 하면 사건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어디론가 조용히 인양하는 일에서부터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를 보듬는 것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사소해 보이지만 너무 중요한 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는지도 생생하게 밝힌다.

“우리는 ‘신데렐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단 아래에 쌓인 먼지를 쓸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처럼 재난 전문가들이 하는 업무 대부분이 비공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급대원이나 소방관처럼 칭찬을 받는 일이 드물지만, 재난 현장 정리와 복구를 위해 눈부신 희생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너무 끔찍해서 잊고 싶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재난의 기록. 지난 20년 동안 가장 충격적인 사건과 재난의 중심에 있었던 저자의 다양한 경험이 담긴 이 책은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책을 통해 우리는 재난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깊이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