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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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생 사업가인 A씨는 1980년에 B와 혼인해서 아들 C와 딸 D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A씨는 같은 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X녀와 2002년께부터 바람을 피우다가 2005년에 X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Y를 낳게 되었습니다.

A씨는 2012년에 B와 협의이혼을 하고 곧바로 X와 재혼했습니다. B와 이혼할 당시 A씨는 B의 요구에 따라 모든 재산을 C와 D에게 5대 5로 나누어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A씨가 2021년에 폐암에 걸리자 X는 A씨를 지속적으로 설득해서 2022년 6월께 모든 재산을 X와 Y에게 7대 3으로 나누어 준다는 자필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원래 X는 이 유언장을 공증받으려고 했으나, 공증인이 병원에 누워 있는 A씨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공증이 어렵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A씨는 이후 한달도 채 안돼 사망했습니다. C와 D는 2012년에 작성된 공증유언장을 가지고 A씨 소유의 부동산을 C와 D 앞으로 이전등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X와 Y는 2022년에 작성된 자필유언장이 있다면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과연 어떤 유언장이 유효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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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망인이 두개 이상의 유언장을 작성한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유언장들의 내용이 서로 별 차이가 없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떤 경우에는 유언장의 내용이 너무 달라서 다툼이 커지기도 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2012년에 작성한 유언장은 재산을 C와 D에게 준다는 내용인데, 2022년에 작성한 유언장은 재산을 X와 Y에게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자필로 작성된 유언장보다는 공증까지 받은 유언장이 우선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공증유언장과 자필유언장 사이에 우열은 없습니다. 공증을 받은 유언장은 가정법원에 검인절차를 밟지 않고도 곧바로 유언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C와 D는 공증유언장만 가지고 곧바로 A씨의 부동산에 대해 이전등기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 개의 유언장이 있는 경우에는 어떤 유언장이 우선하는 것일까요? 정답은 가장 나중에 작성한 유언장이 유효한 유언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 작성된 유언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전에 작성된 유언장은 마지막에 작성된 유언장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에는 더 나중에 작성된 2022년의 자필유언장이 2012년의 공증유언장보다 우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X와 Y는 C와 D를 상대로 A씨의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C와 D의 입장에서는 2022년에 작성된 자필유언장의 효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A씨는 2021년에 폐암이 발병해 투병생활을 하다가 사망하기 불과 한달 전에 자필유언장을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유언당시 망인의 의사능력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X는 원래 A씨의 유언장을 자필이 아닌 공증유언으로 작성하고자 하여 공증인까지 섭외했으나, 그 공증인이 A씨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공증을 거절한 사정까지 있습니다. 만약 C와 D가 그러한 사실을 입증한다면 2022년의 자필유언장을 무효로 만들고 2012년의 공증유언장의 효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어떤 유언장이 유효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나던지 간에, 유언으로부터 배제된 상속인은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즉 2012년 공증유언장이 유효하다면 X와 Y는 C와 D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2022년 자필유언장이 유효하다면 C와 D는 X와 Y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소멸시효가 1년으로 매우 짧습니다. 어떤 유언장이 유효한지에 관해 최종 판단이 내려지고 난 다음에 유류분반환청구를 하게 되면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언의 효력에 관한 소송을 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해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례의 경우에 부당한 영향(Undue Influnce) 이론으로 해결합니다. 부당한 영향이란, 유언자가 자신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보통 배우자, 보호자, 후견인 등)에 의해 설득당해서 진정한 유언의사와 다른 유언장을 작성했을 때 그 유언의 효력을 부인하는 법리입니다. 실무를 하다보면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법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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